영주가 연 상영회
영주는 상영회를 준비했다. 다니는 대학교의 시사실을 하루 빌려서, 노트북을 스크린에 연결해 갖고 있는 영화의 avi 파일을 트는 거다. 그건 영주가 고등학교 때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봤던 영화다. 이상하게도 그런 불법 사이트 중에는 인디/저예산 영화들에 해적 자막을 얹어 올려놓은 경우가 많았다. 수입될 가능성이 아예 없으니 저작권 침해로 걸릴 위험이 적어서 그랬던 걸까, 영주는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생각한다. 여튼 오늘, 그렇게 알게 된 영화들 중 하나를,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거다. 꽤 구색을 갖춘 시사실이기 때문에 영주는 지금껏 노트북 화면으로만 봤던 그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차 있다. 다운받은 해적 자막은 번역이 엉망이라, 영주는 일주일 동안 그걸 고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래도 웬만큼은 다 고쳤다.
시사실을 빌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조교 일을 하는 선배에게 예의를 차린 메시지를 몇 번 보내고 나서 무난히 빌릴 수 있었다. 그 며칠 후에는 어느 극장에 갔다가 그 선배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가 담배를 권하자 영주는 얼떨결에 한 대 받아 피우기도 했다. 그는 아마 누구에게나 인사처럼 담배를 권하는 사람인 듯했고, 영주는 평소 담배를 피우진 않았지만, 그의 자연스러운 습관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며 약간의 말을 주고받은 후 인사를 하고 돌아서며 영주는 방금 꽤 차분하게 흘러간 것 같다고 자평했다. 미세한 뿌듯함까지 느꼈다. 오랜만에 담배를 피워서일 수도 있고, 그 선배가 작고 느리게 말하는 사람이어서 그랬던 걸 수도 있었다.
여튼, 상영회 준비는 다 마쳤다. 정해진 시간에 친구들이 오면, 간단한 소개를 한 후에 파일을 재생하기만 하면 된다. 영주는 왜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굳이 사람들을 불러 같이 보려는 걸까? 자기가 만든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영주는 친구들을 모아서(가둬서) 영화를 보게 하고, 어땠는지 듣고, 또 그에 대해 대답하고 싶은 통제 욕구가 있는 걸까? 자기의 마음 한 부분이 푹 찔린 부분에서, 정확히 너희들도 그러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영주의 친구들은 오늘 이 어두운 곳에 와서 100분 정도를 가만히 앉아있을 것이다. 그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위해, 아니면 영주를 위해.
문을 열었다. 시사실 냄새는 극장 냄새와 다르다. 플라스틱과 쇠, 합성 섬유가 바짝 건조된 냄새지만 그렇다고 기계실 냄새와도 다르다. 방음 처리되어 푹신한 만큼 그 벽의 안쪽 공기층까지 깊게 스며들어 있을 그 냄새를 영주는 깊게 들이마신다. 불을 켜고, 노트북을 꺼내 준비한다. 상영 전후로 스크린에 배경 화면이 잠깐씩 보일 테니, 영주는 배경 화면을 신경 써서 바꾸고 파일들까지도 정리해 두었다. 영주는 당당하거나 떳떳하거나 혹은 무심하게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들어온다. 영주는 어색하게 걸어 나가 영화를 간단히 소개한다. 영주의 친구들은 셋으로 나뉜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채 영주의 말을 듣고 있거나, 영주를 쳐다보며 딴 생각을 하는 중이거나, 아니면 서로 얘기하고 있거나. 영주는 해도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을 이어가다 웃으며 끝을 얼버무린다. 10년 후, 영주는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도 이 영화에 대해 말하다 말끝을 흐릴 것이다.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영주에게 방금 왜 그랬는지, 뭐가 부끄러운 건지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영주는 10년 전에도 이 영화를 그렇게 소개하고 말았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걸 모르는 영주는 시사실 불을 끄고, 파일을 재생한다. 영화가 시작한다. 미리 말하자면, 영주가 고른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도,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재/발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감독은 이 영화 이후 이렇다할 연출 커리어나 대표작이 없다. 배우들 역시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입지를 다지지 못했다.
영화가 끝났다. 영주는 굳이, 크레딧이 전부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린 후에 상영관 불을 켤 거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가? 영화는 끝났지만, 불을 켜기 위해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기다린 경험. 기다림의 이유야 모두 다르겠지만, ‘영화를 만든 모든 이들에 대한 존중’이든, 아니면 그런 거 없이 그냥 시간을 끌기 위해서, 혹은 ‘예술영화’ 표방 극장에서 알바를 하고 있어서든, 그 시간은 유독 길게 흐른다. 다리나 이쪽 저쪽 바꾸어 짚으며 서 있는 거다. 가능하면 티나지 않게. 등이 켜지며 위잉 소리가 난다. 사람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다 갑자기 밝은 빛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듯, 눈을 깜박이고 몸을 뒤척이는 시간. 영주는 괜히 사람들을 따라 눈을 깜박인다. 그러니까 말을 고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친구들에게는. 그렇지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흐른다. 영주는 괜히 몸을 과장되게 움직여본다. 이럴 때는 누가 더 정적을 잘 견디는지에 따라 먼저 말하는 사람이 정해지는 것 같다.
친구들은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주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물론 영주는 자기가 “어릴 때 깊게 감명받은” 영화를 지금의 친구들이 똑같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영주도 남이 추켜세우는 영화를 몰래 비웃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영주는 모직 스웨터를 입었는데, 등의 면적만큼 훅 끼치는 더위와 따끔함을 느낀다. 펼쳐둔 노트북을 정리한다. 선을 가방에 말아서 넣는 잠깐 사이에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술주정 부리는 부분이 아무래도 좀 그랬나? 주인공이 밉상인가? … 그래도 수현이만큼은 재밌게 볼 것 같았는데? 상우는 맥빠진 엔딩이라고 생각할 것 같고… 웃고는 있어도 윤영이는 싫어할 것 같긴 해…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민망함에 자주 노출되면 단련이 될까? 타고나기를 민망함을 덜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나는 아닐 거다… 영주는 오늘의 경험이 기억 속 “민망함” 카테고리로 들어갈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영주는 친구들을 배웅하러 나간다. 몇몇은 식당으로, 몇몇은 흡연구역으로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팔이 가볍게 휘둘린다. 다리를 스치면 청바지의 질감이 느껴진다. 빈 시사실은 조용하지만 형광등 소리가 아까보다 좀더 피치 높고 작게 깔려 있다. 영주는 테이블 위에 있던 가방을 메고, 의자를 넣은 뒤 시사실의 전체 형광등 스위치를 누른다. 모든 조명이 꺼진다. 시사실의 두터운 문을 눌러 닫으며 영주는 왠지 앞으로도 상영회를 계속 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용한 사진: 〈완벽하지 않아〉(2023, 랜달 박)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