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심이 들고 말이 점점 많아진다… 나는 그 셋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 셋도 친하지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들과 왜 친해지고 싶었겠나?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을 좀 흔들고 싶어졌다. 흔든다는 것은 변화시킨다는 개념에 포함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처음엔 내가 흔들고 싶어서 흔들어진 것은 아니었고, 한 친구가 내가 소개한 한 영화가 기억에 남았다고 말해주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서 그 친구는 탈학교 청소년 혹은 대학진학을 하지 않은 청년들에 대한 글을 썼다. 그 후에도 계속 썼다… 이 세상에서 고민할 만할 것은 모두 끌어와 자기반성하는 유형의 친구였다. 열아홉살인데 머리가 벌써 반백이었다. 딴 얘기지만 반백인 친구 치고 글을 못 쓰는 친구들이 없었다. 여튼, 그 때 뒤늦게 내가 그 친구를 흔들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왠지 조금 미안했다…
그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진 않지만, 지속적인 노력과 약간의 기억력, 적재적소의 과장된 너스레가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그들이 내가 했던 말들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말해줄 때. 딱히 필요한 말도 아닌데 굳이 한번 말하고 말 때, 드디어 조금 흔들었구나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놀리기가 가능해질 때. 시험을 앞두고 요즘 초조하고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힘내요…” 대신 “우와, 드디어 초조해하는구나! 이제라도 불안해해서 정말 다행이다!”하고 놀릴 때.
“여러분은 너무 편안해 해요…. 좀 힘들고 걱정하고 초조할 필요가 있어요.”
나만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아직 흔들리지 않은 시기에는 시간을 할애해 그들의 한주간의 근황을 듣는다. 그들은 뭘 말하는가? 방송부 2학년들이 일을 안 해서 관례와 어긋나게 3학년인 자기가 맡게 되었다는 점잖은 불평, 꿀 토마토에 빠져서 싸 가지고 다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 영화를 보려다 두 번 헛걸음 함, 이누야샤를 꼭 보라는 거듭된 강조, 정말 안 궁금한 “칸예의 리스닝 파티”가 왜 그렇게 이례적이었는지, 겨울방학 때 9키로 정도 살을 뺐다는 덤덤한 자랑…. 그들의 멋쩍은 태도나 말투가 안 그래도 싱거운 고3의 근황을 더 싱겁게 만들긴 하지만 - 내용들보단 어느 순간 분명 미지근하게라도 열의가 생겨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귀해서 계속 듣는다. 그들의 근황은 한 주 동안 심심치 않게 떠오르고 나에게 영향을 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설명할 때 명확한 이유 없이 그냥 좋다, 고 말한 친구를 떠올리며, 아마 그 친구는 여기가 이래서 좋아했을 거야, 라고 혼자 짐작하게 되거나, 아빠가 재고 처리로 아이스크림을 가져와 그걸 어쩔 수 없이 먹어버렸다는 얘기를, 나도 아빠가 가득 사온 처치곤란 빵을 먹으며 떠올리고, 그들에게 들은 칸예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보기도 한다. 또 어느 이자카야에서 꿀 토마토가 안주로 나오면 몇 년이 지나도 그 친구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나하나 끝까지 들으며 결국 오늘도 시간을 넘겨서 수업을 마치게 된다.

이야기를 그냥 짓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시험을 보기 위해 하루에 한 편씩, 짧으면 10분에서 길게는 3시간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입시라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 그렇지만 고등학교 3학년인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어느 학교에서든 합격통지를 받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납득하고 그 얼토당토않은 조건들에 군말없이 맞추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방법도 모르겠는데, 이들은 어떻게 쓰고 있는 걸까? 이들은 일주일 동안 뭘 보며, 뭘 하고, 뭘 겪고 와서 또 새로운 이야기를, 정확히는 새로운 조건과 제시어에 충족하는 답안을 쓰는가? 나는 매주 그들의 글을 읽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글 안에 온전히 들어가 있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그 과정은 어땠는지에 대해 할 말이 꽤 많고(파일이 이상해서 저장이 잘 되지 않았다거나, 시간이 부족했다거나, 원래 쓰던 것을 “엎고” 다시 썼다는 류의 외적인 내용도 물론 포함된다), 소수의 친구들만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고한 모습으로 “따로 할 말은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들이 결국 “무엇을” 쓰는지 한마디로 말하긴 어려워도, 그들의 이야기 안에 있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작은 방에서 시작해 흑화한 과학자가 세상을 지배한 공상과학 세계, 음악하는 청춘들이 만년 짝사랑을 하는 동아리 세계관, 십 년 정도의 긴 시간이 흐를 수도 있고, 가끔은 “민형”이나 “원필”, “도운”이가 특별출연하기도 한다.
그들은 선생에게 혹평을 들은 걸 “욕 먹었다”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시험 전날 “나 공부 하나도 안 했어”라고 할 때처럼 서로 묘한 유대감을 쌓는 것 같다. “화요일에 원장쌤한테 엄청 욕 먹었잖아”와 같이 말함으로써 이 관계를 선생-학생의 관계보단 선배/선임-후배/후임의 관계에 더 가까운 관계로 표현하고 싶은 것 같다. “위플래시”를 보고 난 후에는 친구가 크게 혼난 것을 두고 ***“얘 그날 위플래시 당했잖아”***라고 말하기도 하고, 당사자는 “원장 선생님이 저를 애정하시니까…” 라며 눈물을 참는다. 그들과 내가 서로 쉽게 흔들릴 정도의 친밀감이 쌓이고 나면, 입시 기간 다가오는 크고 작은 상황들을 이렇게 울며 하는 농담으로 받아치며 넘어간다. 진도는 나가야 하니까…
그들에게는 쉬는 시간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딱히 냄새를 빼지도 않고 들어오는 정도의 어이없는 순수함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는, 수업 시간에는 절대 짐작하기도 어려운 각자의 어려움도 있고… 잠을 못 자고 온 날은 청바지에 자기도 모르게 볼펜으로 선을 긋고는 집에 어떻게 갈 거냐고 놀리면 다른 쪽 허벅지에 대칭으로 선을 한번 더 긋는다. 잠깐 할 말을 잃었더니 다른 친구가 ***“악귀 들렸냐”***고 놀려 주었다….
억지로든 아니든 [이야기]를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은 다른 쪽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간극은 갈수록 커진다. 이 친구들은 곧 조금씩 스스로를 고립하고 조금씩은 우울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곧 대체 불가능한 동료들을 만나 자기들만의 농담을 만들며 조금 싱겁고 많이 괴상한 영화들을 만들 것이다. 부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