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배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연습 갈 때마다 어떤 울분이 차오르고 고통스럽다면서. 그 말을 들었을 땐 이해하지 못했는데, 올 여름에 나는 속으로 울면서 연습에 갔다. 도대체 뭘로 구성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는 안개를 피부로 닿아가며 한 발씩 나아가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 공연날이 되어 사람들이 시간을 내 우리를 보러 온다는 그 계시록 같은 무서운 사실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라는 회피형의 평생 염불을 이겼다.
그 원초적 두려움, ‘사람들이 보러 온다’는, “쪽팔림”에 대한 회피가 일에 대한 회피보다는 강한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끝까지 작업을 완성할까? 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은 저당잡히는 것이다. (나는 저당잡히는 걸 최대한 미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업이 있을까? 중간에 포기하는 것보다 뭐가 되든 일단 이어가는 게 훨씬 어렵고 용기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하며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어떤 걸까. 판단받고 싶지 않은 마음,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대화, 답이 정해져 있는 토론,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완성의 순간, 끝없는 ‘다시’와 기다림, 손과 발로 해치우지 않는 한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단톡방…
—— 배우가 ‘붙이고 떼는’ 장면을 연습하려면 똑같이 ‘미리 붙이는’ 작업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배우가 ‘그리는’ 장면을 연습하려면 미리 ‘지우는’ 작업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경우엔 시간이 배 이상으로 더 든다.
연습하는 만큼 ‘연습을 위한’ 준비작업도 는다. 모든 세팅은 단축키를 눌러 실행 취소←→재실행하듯 원상복구할 수 없다. 연극에서의 모든 행위는 그것이 ‘무대 위, 극 내적’행위이건 ‘무대 밖, 극 외적’행위이건 관계없이 행위 자체만큼의 정직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걸 납득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
의자는 어느 타이밍에 누가 넣는가? 그리고 언제 빼는가? 펜과 책은 누가 언제 어디에 두는가? 누가 빼는가? 빼지 않는다면 그대로 다시 프리셋(preset)인가? 아니다, 겉모습은 그대로더라도 한번 “만져지고” 나야 프리셋이다. 그럼 그건 누가 언제 하는가?
연극은 구획화되지 않은 노동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분담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영화를 찍을 때처럼 그냥 “손 남는 촬영팀” 아니면 “가까이 있는 연출팀”이 “눈치껏 해줘”가 불가능하다. 그건 영화의 방식이다. 연극에서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빈 곳이 생긴다. 영화에서 너무 “사소해서” 굳이 미리 정해두지 않는 행위는 연극에서 자칫하면 큰 재앙을 초래하는 부재, 혹은 존재로 일어나 보여질 것이다. (부재보다 존재가 더 티난다. 누군가 제 때 빼지 않아 빈 무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의자를 생각해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