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달한 이야기를 쓰라는 과제 앞에서

나에게 “달달한” 이야기가 있을까? 단 것도 아닌 달달한 것. 그런 건 거의 연애 혹은 그 전의 썸을 표현하는 말인데, 나는 그런 건 백조가 수면 위로는 고고하지만, 수면 아래서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처럼 큰 비애와 노동이 수반되는 빙산의 작은 일각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파트는 “생활감”으로 가득 찬 지지부진한 노동과 준비가 수반되는, 그런 표면적인 것 말이다.

나에겐 그런 게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애써 피하면서 지내 왔다. 그런 건 좋은 만큼 어떤 대가를 동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학습됐다. 어렸을 때, 어떤 남자애에게 고백을 받을 때는 일부러 늦게 나갔고, 그 애는 이미 들어간 후였다. 그럼 그렇게 되어 버린 결과를 핑계삼아 - 미필적 고의에 의한 -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결론내리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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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원상가 서스펜스

십 년 정도 지나 대학생이었을 때, 영화관에서 아는 누군가를 마주쳤다. 그는 다른 과 학생이었는데 어떤 강연에서 처음 본 날 이후로 자꾸만 음악이나 영화 따위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쉬우면서도 무례한 방법인 ‘무응답하기’ 로 일관하던 중이었다. 그날 보러 간 것이 무슨 영화였는지는 이 글을 쓰며 지금 기억났는데, 알랭 레네의 <뮤리엘>이었다. 상영 전, 조명이 아직 켜져있을 때 나는 옆 열에서 어떤 인기척 혹은 시선을 느꼈다. 옆 열의 그가 나를 발견하고 인사할 타이밍을 엿보고 있는 걸 주변 시야로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꺼졌다. 나는 안심했는데, 곧 어둠에 눈이 익자 그가 어둠 속에서 내 앞자리로 옮겨앉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의 신변에 불안감을 줄 만한 체격이나 인상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나 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편하지가 않았다. 영화의 내용은커녕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끝인가? 끝인가? 이젠 끝이겠지. 이 컷이 마지막이겠지, 하고 엔딩만을 기다렸다. THE END. 자막이 뜸과 동시에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어둠에 허우적거리며 출구를 찾아 나갔다.

3. 죄송합니다

출구가 너무 멀었고 그쪽으로 향하는 길도 너무 광활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바로 오른쪽으로 꺾었다. 나는 후미진 비상용 출구로 돌진하고 있었다. 오늘에야 기억났는데, 그 문은 내가 장선우의 <거짓말>을 보러 낙원상가에 처음 와봤던 날, 길을 잘못 들어 헤매게 되었던 그 계단이었다. 난 결코 뛰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마주한 바퀴벌레마냥 발이 먼저 움직이고 의식이 뒤이어 따라오는 초월적 경험을 했다. 내려가다 보니 문이 나왔고 그건 2층에서 바로 야외로 이어지는 비상계단이었다. 철판으로 된 계단에서 소리가 덜 나도록 내려가는데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그가 있었다. 순간 내가 얼마나 궁상맞게 도망쳐 나왔는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창피했다. 그리고 그 엉뚱한 경로로 필사적으로 나가는 나를 쫓은 그마저도 내가 궁상맞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겨우 ‘안녕하세요’라고 웅얼댔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데 그 인상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 문으로 들어갔다. 미안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그 길로 내려갔다. 그랬더니 <거짓말>을 본 날 잘못 나가서 또 헤맸던 인사동 거리가 나왔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나는 충동적으로 아무 옷가게에 들어가 아직까지도 한번도 안 입은 어떤 옷 하나를 샀다. 원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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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인들을 엿보기(죄송합니다)

크고 나서 나는 다른 연인들을 엿봤다. 주로 카페나 길거리에서. 그런 달달함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 그걸 위한 단계들은 어떤 불편함과 불안함을 동반하는 것 같았다. 원피스 같은 불편한 옷을 입고 견디는 것. 한껏 꾸미고 나가도 집에 들어오면 브라를 벗어던져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겉보기를 엿보며 나는 그들을 통속적으로 이해했다. 빨간 장미는 연인에게 주는 것, 세 번 데이트를 하면 그 안에 사귀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것, 같은 연인들의 룰을 옆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걸 경멸하면서도 거기에 갇히게 된다. 잘 모르니까.

어떤 연인들은 통속적 룰에서부터 자유로운 것 같기도 했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 같기도 했고, 달콤한 데이트만이 아닌, 생활을 같이 하는 연인들은 멋져 보였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 만난 걸까?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생활을 같이 하는 저 사람들은 집세는 어떻게 내고 있을까? 만약 헤어지면 집세는 어떻게 다시 나눌까? 그런 (생활 공동체에 가까운)연애는 어떻게들 도전하는 걸까? 나는 그런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통속적인 연애를 점점 대상화하며 경멸하는 동시에 그런 관계만을 이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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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솔로 쪽 취향

그 동안 나는 어땠을까? 나는 달달한 관계도, 짠내나는 생활공동체적 관계도 없었다. 좀 공허할 때면 동네 슈퍼에서 팜유와 설탕이 가득 든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잔뜩 산 후 폭식한 뒤 그걸 변기 앞에서 토해내고 그 토한 것에도 아직 달달한 맛이 남아있다는 그런 확인을 한 적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