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사춘기가 온 나는 지지리도 말을 안 들었다.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쳤고, 자존심도 승부욕도 엄마에게만큼은 끝도 없어서, 엄마가 평정심을 잃을 때까지 이기려고 들었다. 엄마는 분명 좋은 양육자가 되려고 노력했고 많이 참았지만, 신경을 교묘하게, 영악하게 긁는 나 때문에 곧 폭발하고는 했다. 정확하게는 엄마가 폭발할 때까지 한 마디라도 더 얹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나였다. 엄마가 폭발하면, 엄마는 나를 쫓아왔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가장 구석진 곳으로 도망쳤다. 책상과 책꽂이 사이에 등을 붙이고 선 나를 엄마는 두 손으로 마구 때렸는데, 나는 그때 “가드 올린다”는 걸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마구 연타를 당하면서도 동시에 “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는 버텨지는구나” 혹은 “이제 나도 맷집이 생긴 건가?” 같은 딴 생각이 가능해진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는 해리, 영화적으로는 마스터 숏으로 조망하듯 현상과 유리되는 자기객관화, 시트콤적으로는 어딘가에서 나를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 팀을 보며 윙크하는 것, 요즘 말로는 메타인지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게 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결코 딴 생각을 안 하는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상에서 계속 어느 정도 유리된 삶은, 회의에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이 회의의 의미, 이 회의에서의 나, 이 회의에 대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입장차, 그것을 통해서 일어날 머리아픈 미래… 같은 코멘터리 트랙이 계속 들려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 트랙을 말하고, 녹음하고, 통제하는 사람도 나 자신이다. 그러니까 복수로 분열된 자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 후로도 당연히 딴 생각들을 했다. 그 기능이 가장 활성화되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뭣도 아닌 “으른”들이 떠드는데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황, 평등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이성을 잃거나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어른들과 선배들을 보면서, 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놀고 있네… 같은 말을 혼자 재생시켰다.

대학교 때, 휴학을 하고 일하던 때였다. 지인의 소개로 하게 된 그 일은 어느 방송 후반작업 업체에서 후반작업의 큰 부분을 담당하는 기사님을 보조하는 일이었다. 그분은 중년의 여자분이셨고, 나는 그분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분을 처음 만났지만, 내 지인들이나 선배들은 그분을 존경하고 잘 따랐다. 내가 선생님을 보조하며 참여한 수개월간의 드라마 일정이 막 끝났을 시기였다. 방송 관련 일이 대부분 그렇듯 이런저런 꼴을 다 보며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가 끝나니 그제서야 숨이 트이는 듯했다. 선생님과 나는 모든 제작진이 참여하는 종방연에 초대되었다. 나와 선생님, 그리고 우리 둘의 고용주이자 역시 50대의 여성인 대표님이 함께 갔다.(그분 또한 나는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제작진들과 잘 알지도 못하고, 즐겁게 마시며 회포를 풀 정도도 아니어서 적당히 우리끼리 한잔 하고 나오려고 했다. 사람들이랑 인사하고 나오는데,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우리 대표님이었는데, 제작사 총괄 피디가 사무실로 오라고 하니 같이 가자는 거였다. 내가 일한 후반작업실의 입장에서는 외주를 주는, 갑의 위치인 거래처였다. 그 피디는 왜 뒷풀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까?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선생님은 망설였지만 대표님이 부르니 일단 가볼까요, 하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사회 초년생의 어려운 점은 이런 자잘한 순간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궁금하긴 했다. 그 회사는 어떻게 생겼을까? 프로젝트 내내 모든 사람이 중요한 사람처럼 모시던 그 피디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잠깐만 들르면 된다고 하니 나는 선생님을 따라 가겠다고 했다. 나와 선생님은 택시를 타고 제작사 사무실로 갔다. 대표님과 같이 타고 갔는지, 그 앞에서 만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튼 우리는 많은 문화 컨텐츠 프로듀싱 제작사들이 밀집한 한 서울의 한 구의 골목 건물 앞에 내렸다. 불 꺼진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한두 층을 쓰는 사무실이 있었다. 우리는 그 피디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꽤 넓은 방. 그 가장 안쪽에는 책상이 있고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자개 명패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를 모르지만 “뭐 되는” 사람인 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는 회의실처럼 ㅁ자 모양으로 책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5-6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나와 선생님, 대표님은 모두 여자였다. 나와 선생님은 얼떨떨하게 그 희의용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권위적이었고, 나와 함께 온 선생님들의 태도뿐 아니라 그간 들은 것, 그 공간의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그를 “힘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게 했다. 사실 난 방송 언저리에서 일할 생각도 없겠다, 평소 온 제작진이 굽신거리던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년생다운 “그 아저씨 뭔데? 뭐 돼?” 같은 치기어린 불만을 숨기며 선생님들을 따라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초년생답게.

그런데 뜻밖에, 그 피디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딸려 온 어린애가 거슬렸는지 “넌 뭐야.” 혹은 “얜 누구야.” 같은 질문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감정을 느꼈다. 모욕은 모욕인데, 명료하고 근거 있는 모욕감 같은 거였다. 주위가 고요해졌다. 하지만 정신이 뚜렷해지기도 했다. 대답은 내가 직접 해야 한다. 아무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나는 침착하려고 노력하며 대답을 이어갔다. “저는 OOO라고 하고요… 프로젝트에서 OOO 선생님 보조로 일했습니다…” 라고 답했는데, 그의 이어지는 말은 똑같았다. “너 누구냐고.” 똑같은 말이지만 다른 뜻의 두 번의 질문. 그러니까 왜 왔냐는 뜻이겠지. 나와 함께 온 두 선생님 또한 그의 태도에 당황한 듯 분위기를 무마했다. “OO씨가 이번에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자본이 곧 권력임을 제대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 순간을 견디자 나에 대한 관심이 가셨다. 어차피 나는 애송이인데. “너 뭐야?”라고 두 번 물어서 그 애송이에게 “저 누굽니다” 하고 웅얼거리게 함으로써 수치심을 줄 수 있는 게 권력이구나… 나는 그렇게 또 시공간에서 벗어나 딴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그들을 경멸하며… 내가 가지지 않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경멸, 혹은 내가 태어날 즈음부터 경력을 시작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작품들을 만들어온 사람(에 대한 존경을 거부하기)… 그게 그렇게 대단해? 근데 뭐 어쩌라고. 난 그거 모르는데, 씨발… 같은 생각을 혼자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었다. 실제로도 대표님과 피디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젊었을 때부터 함께 고생하며 아직도 회자되곤 하는 작품들에 중요한 역할로 기여했던 것 같았다. 예전엔 다들 어느 정도로 헌신하며 일했는데, 요즘은 통 그런 모습은 안 보인다… 같은 말들이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연신 술을 마시던 두 사람의 말수가 줄고, 눈을 맞추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더니 대표님이 그 피디의 옆 자리로 갔다.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무섭기만 했던 대표님은 내가 처음 보는 취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디가 나에게 세 번째 말을 건넸다. 안 가고 뭐 해? 였던가… 선생님도 뭔가를 감지한 듯, 그러나 차분한 웃음을 간직한 채 “OO씨, 우리는 가봐요.”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어리둥절한 찰나 대표님을 봤는데, 대표님은 그 피디와 붙어 앉은 채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어서 시선을 거두고 그 방을 빠져나와 이미 저 앞에 가고 있는 선생님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때 뒤에서 또다시 무슨 말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보다 더 어리버리할 수 없는 태도로 옙? 같은 소리를 내며 다시 사무실께까지 되돌아갔다. 냉장고에서 술 가져오라는 소리인 것 같았고, 나는 두리번거리다 냉장고를 발견했다. 문을 여니 소주병들이 있었고, 나는 한 병을 꺼내 내가 겨우 빠져나온 그곳에 다시 들어가 그 안의 둘과 멀리 떨어진 문가 근처의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분명 주변시야로 아까 그대로 붙어 있는 그들이 보인 것도 같다. 그렇게 뒤를 돌았는데 “문을 닫고 나가”라는 말이 들렸고, 그 말만은 반발심 없이 들어줄 수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하던 에너지를 그대로 문에 실어 닫았다. 쾅. 하고 만족스러울 만큼 사무실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나의 “선생님”은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고, 아주 태연하게 혹은 방금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평소와 같은 상냥한 미소를 보였다. 그 골목에서 우리는 각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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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아니, 내가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문자 그대로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납득 혹은 동의하기 어려운 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종의 성 접대를 한 것인가? 하지만 평소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원한” 것인가? 두 사람 다 싱글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적절하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것을 적절하지 않게, 혹은 불쾌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50대의 두 성인이 가질 수 있는 (다소 충동적인) 성적 욕구와 두 사람의(혹은 한 사람의) 자기결정권을 배제시키고 있나? 나는 왜 이따위 일에도 나의 시각이 윤리적으로 잘못됐을지 검열하는 노동을 하는가? 대표님이 선생님에게 전화해 그 사무실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혹시 도움을 요청한 거였을까? 내가 이 일을 너무 피해의식에 젖어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내가 엄청 무서워했던 상사의 추잡스러운 모습을 본 것일까? 그들이 내 부모 나이뻘이었다는 게 나에게 프로이트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아니면 “으른”들의 관계에는 세월과 일과 연애 혹은 섹스 혹은 착취가 자연스럽게 뒤섞여있다는 걸 내가 몰랐던 걸까? 끊임없이 의문이 이어질 뿐이다.

여전히 내가 애송이라서일까, 나는 아직 방송 관련 일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내가 그렇게 된 게 이 날의 경험때문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그만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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