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구경은 언제 재밌고 언제 재미 없을까… 싸움 구경이 재밌을 순 있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밌을 정돈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 “16영자 부럽다 16영숙옥순파이트도 보고 10정숙영숙파이트도 직관하고” 라는 트윗이 올라왔다. "나는 솔로" 출연자들의 다툼 얘기다. 사람들은 분명 어떤 싸움을 본 것에 대해서는 좋은 구경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고. 그러니까 관전할 수 있는 싸움이며 자신으로부터 거리두기가 가능할 때 그 싸움은 볼 거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단순히 볼 거리를 넘어 재미가 있으려면 우리가 양쪽을 다 미워할 때 즐거움이 성립된다. 얼마 전 무산된 마크 주커버그와 일론 머스크의 격투기 대결이 바로 그런 싸움일 수 있었다. 전문 트레이너와 개인 의료진을 고용할 수 있는 테크 재벌들의 허세로 벌어진 싸움판. 그에 비해 어린 시절 부모의 싸움은 관전이 불가능하다. 부모의 싸움은 자식에겐 고통만을 준다. 반려견들도 인간의 언성이 높아지면 어두운 곳에 들어가 숨는다. 나는 이입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부싸움의 기억이 많다.
학교에선 분명 조마조마하면서도 재미있는 싸움들이 있었다. 수업 중에 교실 맨 뒤에서 떨어져 있던 두 명이 서로 욕을 주고받으며 싸우고 있었는데, 한 명이 심한 욕을 했던 것 같다. 그걸 들은 애가 화를 못 참고 아이스티 통을 던졌는데, 그게 교실을 횡으로 가르며 날다 뚜껑이 열렸는지 노란 아이스티 가루가 오로라처럼 내려오는 장관이 펼쳐졌다. 평소 인자한 편이던 영어 선생님은 그런 싸움은 처음 본 듯 잠시 얼어서 말을 더듬느라 제지하지 못했다. 아마 여자애들이라 더 놀랐을 것 같다.
중학교 때 남자애들이 싸우는 건 무서웠다. 그 애들이 주먹질을 시작하면 교실은 흥분으로 달아오르고, 당사자들은 눈이 홰까닥 돌아서 주먹을 연타로 날리며 추진력을 얻는다. 1분도 안 될 짧은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모든 감각을 생생히 받아들인다. 책걸상을 세게 차 쿠당당 소리를 내 기선제압을 하고, 가장 거센 소리로 욕을 날리고, 선빵을 날리고, 동시에 온몸이 달아오르고, 뜨거운 청중의 반응과 시선이 온 피부에 감기고, 다음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한번 더 유효타를 칠 수 있으면 더 좋고, 그 와중 들려오는 개개인들의 소리, 야유, 비명, 맞고 피하는 중 미처 계산하지 못한 선량한 다른 애들의 경로 탓에 부딪치거나 쏟아지는 물건들, 뒷걸음질치다 걸려 넘어지며 찢어질 수 있는 옷, 그 안에서 흐르는 피, 주먹이 빗맞았을 때 차오르는 조급함,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야 쌤 온다” 같은 집중을 해치는 소리 등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그런 건 싸움이 끝나고 나서 하나씩 분리되어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 주먹에 무게를 좀더 실었어야 하는데… 기에서 밀리면 지는 거다. 선생님이 말리고 싸움이 잦아들면 다른 애들에게 양 팔이 붙들린 채 씩씩거린다.
지금의 한국인들은 개싸움이 아닌 기싸움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개싸움은 곧 금전적 손실로 이어진다) 유명인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주먹질은 못 하는 대신 은근한 행동으로 겨루는 싸움. 그게 기록된 영상들이 숏폼 영상이나 짤로 재생산되어 퍼진다. 더 정확히는, 사람들은 여자들의 기싸움에 너무나도 환장한다. 아마 가장 유명한 싸움은 모 오락프로그램 촬영 현장의 휴식 시간에 두 명의 여성 연예인이 말다툼한 영상이 촬영되어 유포된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사건일 거다. 그 소동에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도 되는 양, 정말 반말을 했는지, 어떤 쌍욕이 나왔는지가 시간차를 두고 공개될 때마다 여론이 바뀌었다. 패러디 영상도 많이 나왔고, 최근에도 기싸움 영상에는 십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 사건이 언급된다.
그 이후 당사자들은 오랜 기간 “자숙”했고, 한 명은 완전 은퇴, 한 명은 최근에야 매체로 복귀했다. 복귀한 쪽은 직접 그 사건을 재연하는 꽁트에 출연했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한번 곤욕을 치른 사건에 대해 본인이 직접 언급하며 여유를 보이기. 그렇지만 그들이 싸울 수밖에 없던, 오랜 시간 자숙하거나 끝내 은퇴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는 방송 환경은 잘 보여지지 않는다, 추운 겨울 바다에 입수하는 벌칙을 받는 오락프로그램의 문법, 극한의 날씨를 견디거나 그 속에서 끝없이 대기하는 것. 그 싸움이 “추워요?”라는 말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싸우는 사람들은 잠시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저 때 주먹이 나가거나 쌍욕을 들이붓지 않았으면, 평정심을 가졌더라면 큰 기회를 잃지 않았을 텐데… 싸움에 참전한다는 건 현대사회에서 아무리 계산해도 손해인 행동이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가족 욕을 들먹인 상대 선수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아 쓰러트린 프랑스의 주장 지네딘 지단 또한 그랬다. 사람들은 싸움을 구경하며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세부 정보, 전말, 양쪽의 전력(?) 등을 입수하고 갑론을박한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데 최근 재미있고 산업적이면서도 그것을 관전하는 내내 여성혐오적이라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됐던 싸움이 떠올랐다. 그룹 뉴진스의 프로듀서인 민희진과 그 모회사인 하이브의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대형 기획사와 을, 병으로 여겨지던 소속 프로듀서, 아이돌 멤버들의 거침없는 폭로와 그 태도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물론 민희진 또한 부하 직원으로부터 부당대우 폭로를 받았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그렇게 충동적이거나, 거친 언사가 동반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졌을까? 사람들은 싸움의 시작이 어땠건, 그게 얼마나 정당하건 간에 그 싸움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찾으려는 것 같다. 요즘 말로 하면 “반말은 못 참지”, “엄마 욕은 못 참지”, “부당대우와 마녀사냥은 못 참지” 같은 심리로 다들 대리참전하는 것이다. 많은 싸움에 대한 댓글이 대부분 “ ()하게 대응한 건 좀 심하긴 했지만 나 같아도 ()하면 화날 듯” 같은 식이다. 많은 극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부당한 상황에 맞서 싸우지만 동시에 그들도 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음이 함께 조명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