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경처럼 술 마시는 짓은 2020년대 들어 아무도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술 마시는 영화도 이제 안 나오는 줄 알았다. 영경은 소주를 물처럼 들이킨다. 영경이 맥주를 마시는 유일한 순간은 편의점에서 방금 산 캔맥주 안에 소주를 탈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영경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쉬지 않고 마시는지 의아해하다, 이유를 듣고 이해가 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다가, 차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실 땐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영경이 만난 “수환이”가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후 수환은 골무 모자를 쓰고, 무릎에는 담요도 생긴다. 야윈 모습에서 [약속]의 박신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나는 언제나 그렇듯 딴 생각으로 빠졌다.

전도연이 몇년 전 JTBC [방구석 1열]에 나왔던 장면들 중, sns에서 화제가 됐던 짧은 클립을 떠올렸다. 방송에서 전도연의 출연작들을 톺아보던 중, [약속]에서 죽음을 앞둔 박신양이 눈물로 고백하는 장면이 소개되자 고정 패널인 장성규가 당시 환자로 분한 박신양의 모습을 많이들 따라하곤 했다며, 울음기가 가득한 박신양의 대사를 발음을 뭉개가며 따라한다. (장윤주가 옆에서 “어머”라고 함.)

그걸 본 전도연은 허탈하게 웃고, 옆에서 눈치를 보던 임필성이 “도연 씨가 이 방송에 출연한 걸 후회하는 표정”이라고 끼어든다. 그제야 전도연은 그 성당 장면 촬영에서 감정 소모가 커 박신양이 많이 힘들어했다며, 희화화하면 안 되는 대사라고 선을 긋는다.

그 클립이 돌던 당시에는 가볍고 경솔하기 마련인 남성 방송인들이 또 하나의 무례한 짓을 했구나, 하고 넘겼었는데, [봄밤]의 “수환”을 보며 자연스레 [약속]을 떠올린 오늘, 아니 정확히는 [약속]을 소개하는 [방구석 1열]을 떠올린 오늘은, 장성규 - 전도연, 임필성의 대화를 조금 다른 입장에서 떠올리게 됐다.

“영화 관객/소비자”와 “관계자/업계인”들은 사실 거의 직접 대화할 일이 없다. 위의 대화에서 장성규는 “방송 패널”이 아닌 “관객/소비자”로서의 경험을 다소 경박스럽게 공유한 것뿐이다. 이들이 직접 마주해 대화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 아닌가? 경멸스러운 현상이지만, [7번방의 선물] 류승룡의 “예승이 콩 먹어” 대사나, [맨발의 기봉이]의 신현준의 연기는 모두가(심지어 배우 본인이 직접) 여기저기서 줄기차게 따라하며 희화화해왔지 않나?

(물론 장성규와 같은 일반적 남성 패널들의 일반적 무례함을 나도 일반적으로 경멸하며… 두 영화의 장애혐오적 묘사 자체가 경멸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류승룡과 신현준이 앞의 영화들에서 각자 들였을 “노력(?)”, “몰입(?)”과 박신양이 [약속]에서 취했을 태도에 분명 어떤 진지함(?)의 차이가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 관객/소비자가 그것을 고려해가며 따라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방구석 1열]은 영화 “업계인”들의 프로그램이라 $리스펙$을 해드려야 했던 것일까? 사실 $리스펙$을 받아야 하는 것은 울음섞인 발음으로 고백하는 박신양이 아니라, 실제의 장애를 갖고 있는, 류승룡과 신현준이 분한 그 배역들이 아닐까?

“칸 수상자” 전도연 앞에서 “연기 학구파” 박신양의 연기를 따라하는 것과 “기계적 슬랩스틱”을 팬서비스마냥 구사하는 신현준, 류승룡의 연기를 따라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장성규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고현정이 모 드라마에서 “개인 소장” 에르메스 백을 아스팔트에 내려치는 장면을 보고, 아무도 에르메스 가방 장인의 “노고”를 운운하며 노여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경탄했던 건 “배우 고현정”의 $분노연기$가 아니라 협찬도 안 받은 에르메스를 긁는 “부자 고현정”의 배포를 향한 것이었다.

여튼… [봄밤]의 촬영은 “거칠다”. 거칠다는 표현은 으레 사람들이 “막 찍었는데 그게 ‘못찍었다’는 뜻은 아니고, 그게 다 의도가 있는 막찍음이야”라고 할 때의 “거칠음”이다. 특히 야외의 낮 장면들은 도그마 선언의 영화들이 떠오를 정도로(…) 거칠다. 어쩔 수 없이 다 “날라” 있기 때문에 비디오카메라의 질감에 가까울 정도다. 그게 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을 헷갈리게 한다. 후반부, 아침 흙길에서 수환이 영경을 마중 나온 장면에서 둘은 스마트폰을 가진 현대인이라면 웬만하면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한다. 흙먼지가 뭉개진 양말, 얇은 환자복, 위태로운 찧음과 넘어짐, 포옹… 아무 것도 동시대적이지 않다… 그런가하면 밤 장면들은 훨씬 선명하게 찍혀 있는데, 아파트, 편의점, 이중잠금 도어락 등 확실히 깨끗하고 ‘새것’에 가까운 공간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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