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축제의 프로그램에 신청해 참여했다. 어떤 축제였는지 익명으로 쓰려고 했지만 불가능할 것 같다. 한 줄만에 철회해야겠다…
그곳은 대한민국장애인무용제(이하 KIADA)다. 다른 무용제와 다름없이, 각종 초청, 기획공연, 포럼, 워크숍, 댄스필름 상영 등의 다양한 참여기회가 있는 축제다. 이 축제의 댄스워크숍 프로그램의 경우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참여 신청을 두 달 전부터 미리 받고, 장애인 참가자들을 최대한 모집한 후 남은 자리를 비장애인 신청자에게 배정한다. 워크숍 참가비뿐만 아니라 공연 관람료까지 모두 무료라서, 위치와 공간, 기회, 가격까지 모든 면에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좁게 비교하자면 비장애인들이 주가 되는(그러니까 대다수의) 축제나 행사의 경우 예산과 인력 부족, 즉 돈 핑계로 접근성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편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는 홈페이지 회원가입이나 본인인증 없이, 무료로 예매가 가능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내에서의 법적 신분, 가격 문턱을 최대한 없애려는 시도는 “정상국적(?)”의 일반 시민인 나에게도 가볍고 편리했다. 하지만 다른 영화제의 티켓 가격이 만 원까지 오른 것에 비해 어떻게 수익을 내고 축제 운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노파심이 들기도 했다.
여튼 나는 KIADA 워크숍 신청을 했다는 걸 잊어버릴 즈음에 참가 확정 안내 전화를 받았다. 문자가 아닌 전화로 일일이 안내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수화기 너머 전화주신 분의 말투에서 매끄럽고 속도감 있는 사무회화의 내공과 함께 소위 ‘교포’ 억양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잠시 그 분의 아우라에 빠져 있다가 문득 대학교 동기였던 진아 언니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진아 언니는 나와 같이 ‘현역’ 입학한 새내기였지만, 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왔기 때문에 한 살이 많다고 했었던, 쓸데없는 k-tmi까지 기억났다…
워크숍 참가 전날 밤, 인스타에서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의 KIADA 후원 사실을 알리고 규탄하는 연서명 요청 글을 보았다. 정확히는 이스라엘대사관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KIADA를 규탄하고 후원금 반환을 요구하는 연서명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욕심껏 신청한 워크숍 중 하나도 이스라엘 국적의 안무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기에 가는 것은 맞는 것일까? “맞는”? 나는 ‘어디’에 ‘들어맞고’ 싶은 거지? 그럼 뭐가 (그놈의) ‘옳은 것’인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던 러시아 무용수들이 포함된 단체의 공연을 문제의식 없이 환영하던 목소리를 경멸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군에 자원했다가 사망한 무용수도 있었다…
내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안무가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왜 개인이자 창작자인 누군가의 국적만으로 정치적 입장을 궁금해할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음침할 수가 있나? 그게 문제가 아니라 대사관 후원이 문제잖아 멍청아… 당장 내일인 워크숍을 불참한다고, 이른 아침에라도 ‘진아 언니’ 같은 그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불참 사유에 대해 “KIADA의 이스라엘대사관 후원에 대해 팔레스타인 해방 연대자의 입장으로 보이콧한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불참해야 하는지, 혹은 복잡한 마음을 안고 그냥 참여할지 고민하며 인스타 게시물을 다시 읽었다. 연서명 제안을 발의한 사람은 작년 KIADA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분이라고 스스로를 밝히고 있었다! 이 분만큼 축제가 지속 가능하도록 바라는 사람이 축제 내부에 또 있을까? KIADA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지가 없으면 나서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서명 폼을 열어 이름과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나서, 또다시 그럼 내일은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들었다.
이른 일정의 좋은 점은, 회피형 인간을 일단 이런저런 고민 없이 몸을 바쁘게 움직여 나서게 한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결국 신청해둔 두 개의 워크숍에 참여하러 혜화역 2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서도,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의 후원 사실에 대해 촘촘히 떠올리며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채였다. 이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혜화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체감상 10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혜화를 들를 때마다, 세븐일레븐과 스타벅스가 있고, 파랑새극장이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이라고만 생각했지, 이곳이 장애인문화예술원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같은 워크숍에 참여하러 온 듯한 장애인 한 분, 이동지원 활동가 분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 순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그리고 대규모 학살에 대한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의 무대응에 대한 규탄, KIADA의 이스라엘 자본 수용에 대한 불만과 별개로, 일단 왔으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실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가자, 정말 오랜만에 구색을 갖춘(?) 축제에 온 것 같았다. “재단 지원” 혹은 “후원사 리스트” 수준이 아닌, “관” 수준의 풍족함. 왜 오랜만일까? 나는 관이 개입한 축제를 신뢰하지 않는다. 영화제가 주로 그랬다. 자료원이나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만든 기획전과 관, 그러니까 문체부나 외교부, 각종 주한대사관들이 골고루 돈을 주며 추천한 프로그램을 상영하는 기획전에서의 경험은 여러모로 천지차이다. 열악한 환경의 극장에 앉아 어디서 다시 보기 힘들 기이한 영화를 보느냐, 아니면 상영 전에 제공되는 미니샌드위치와 치즈, 과일, 와인을 얻어먹고 들어가 쓰레기 같은 영화를 보다 뛰쳐나오느냐 정도로 다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여긴 관의 축제 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선 생략되거나, 약식으로 대체되는 서명 절차 같은 것들이 모두 손에 잡히는 실물 A4용지로 개별 준비되어 있었다. 촬영 초상권 동의서, 성범죄 전과 열람 동의서, 그리고 투명 pp 포장지에 종류별로 소분된 간식들과 줄지어 쌓인 “이오” 요구르트. 자세히 보니 남양 제품이다… 이렇게 풍족한 행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예산을 집행할까. 아무래도 남양유업이 경쟁사 제품보다 조금씩 할인하는 전략을 갖고 있어서일까.
이동에 어려움을 가진 몸, 취약한 몸,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가졌거나 가질 몸, 그리고 그들의 반려자들을 초청하고 모아서 새로운 기준의 움직임을 시도하는 축제는 당연하게도 돈이 몇 배로 든다. 외국의 장애인 무용단을 초청하는 것부터, 체류, 이동, 통역에 필요한 인력, 장치, 시간은 모두 돈으로 해결 가능하다. (아직 나는 돈 외에는 해결 가능한 다른 수단을 떠올리지 못하겠다)
워크숍은 정시보다 20분여 지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참여자들이 연습실에 모두 들어오고, 준비하기 위해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위한 통역과 도움에 두세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다. 쓰는 언어가 달라서 연습실을 4등분해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진행되기도 했다. (큰 체격의 유럽계 이스라엘인인 비장애인 남성 안무가가 그렇게 요청한 것에서 조금 꺼림칙했던 건 나뿐일까?)
초청된 스페인 무용단의 안무가가 진행하는 워크숍에서는 그가 자신의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이름으로 호명하다가도, 홍콩 참가자에게는 “홍콩!”으로 호명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날 오전에 바로 이 연습실에서 자신의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 역시 초청된 안무가이다! (이런 생각을 굳이 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일까? 왜 축제 공식홈페이지에서는 이 안무가의 출신지를 “중국(홍콩)”이라고 병기하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물을 채운 플라스틱 컵을 이용한 2인 움직임을 하며 바닥에 한바탕 물이 쏟아지자 그가 재빨리 대걸레를 챙겨서 물을 닦았고, 참여자 중 다수였던 스페인 무용수들이 “여기, 여기! Aqui!” 하며 너도나도 바닥에 흐른 물을 가리켰다. 분명 약간은 놀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느꼈다. 유럽인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