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방문한 지역 축제를 둘러보던 당신, 엽서를 쓰면 1년 후에 우편으로 보내준다는 “느린우체통” 행사 부스를 마주치게 되었다. 무슨 생각이 드는가?

나는 반사적으로, “1년 후에도 우리가 애인일까?”를 생각한다. 애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거다. 관계나 물건에 대한 상실 공포가 있는 경우, 애초에 모든 관계나 물건에 대해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별/상실할 수 있다는 전제를 염두하고, 적극적으로 애착을 두지 않으며, 잊을만하면 “우리 헤어질 수도 있잖아” 같은 말을 일부러 뱉으며 위악을 부리고, 대안/대체재를 (남몰래) 구상해두기도 하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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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리 체념’하는 정서는 밀레니얼(81년생부터 96년생까지라는, 너무 넓은 그 범위요. 네.) 들이 흔하고 익숙하게 공유하는 것임에도, 이런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영화 캐릭터는 찾기 어려웠다. 나는 **〈스파이더맨 홈커밍: 노 웨이 홈〉(2021)**의 MJ인 젠다야의 말 정도를 기억한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어. Expect disappointment and you'll never get disappointed.” 정말 멋없는 대사인 건 둘째치고, 정말 이것 뿐인가? 다른 영화에서는 상실에 대한 예비공포 때문에 기대나 애착을 포기한다는 지론을 밝히는 인물이 없었나? 여튼, 너무나도 평범한 이 대사는 확실히 밀레니얼과 젠지들의 공허함을 대변하긴 했던 것 같다.

그 이전엔 본 얼티메이텀(2007)에서 CIA 중간보스인 파멜라 랜디가 본을 찾으려 혈안이 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최선을 기대하되 최악에 대비한다. My number one rule is; hope for the best, plan for the worst.”(격언을 인용한 이 대사는 각자도생 → “갓생”추구 → 감염병 대유행 시기를 지나며 꾸준히 소환되어 시대정신의 일부가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최악을 예상할 정도의 “지능”, 최악에 대비할 여윳돈이 없는 사람들을 “도태되었다”고 손가락질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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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본 얼티메이텀]까지 뻗어나갔을 때, 형광 등산자켓을 걸친 50대 남성 공무원 선생님, 그러니까 부스 아저씨가 권유한다. “엽서 쓰고 가요~” 당신과 애인은 누구도 먼저 거절하지 못한다. 둘 다 거절하고 싶음에도.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둘 사이에서 “관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자신 없다”고 먼저 시인하는 꼴이다. 실제로 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상대를 굳이 상처주지 않기 위해 둘다 애매모호하게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결국 당신과 애인은 나란히 “느린우체통” 엽서를 받아들고서야 서로 털어놓는다. “우리 내년에 이 편지 받을 때도 안 헤어져 있겠지?” 마치 “니가 나를 차지 않는다면 이 관계는 현상유지될 거야” 라는 당부를 굳이 수동적 의문형을 통해 우회한다. “날 떠나지마!” 같은 간단한 말로 요구할 수 있는 단순한 마음인데, 이걸 “내 패를 드러내는” 행위이자 손해 보는 행위로 생각한다. 나의 마음, 애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불리해지는 거라고 여기는 게임의 논리와도 같은 정서다. 이런 심리를 “요즘 사람들 다 그렇다”는 연막을 쳐 가며 상담 선생님에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는 소위 “쿨병”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며 질색했다. 남들에게 감정을 숨기다 결국 자신의 감정도 모르게 된 내담자들이 많다는 거였다.

왜 이 이야기를 시작한 걸까? 며칠 전, 약 11개월 전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당시 애인과 서로에게 썼던 “느린우체통” 엽서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고 말하는 MJ처럼, 불안증이 있는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을 위악적일 만큼 고약하게 예언해 놓음으로써 그 상황만큼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징크스를 믿곤 하는데, 그것도 소용없었다. “우리 이거 보내 놓고 헤어지면 진짜 웃기고 슬프겠지? 하하!” 해놓고, 정말 웃기고 슬픈 사람이 된 것이다! 내가 받은 엽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1년 뒤에 정말 편지가 올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상태(??)일까? 그건 모르겠지만 지금 정말 사랑해.

“그건 모르겠지만”과 “정말 사랑해” 사이에 “지금”이란 한정을 둘 수 있다니. 어디서도 본 적 없다. 저런 문장력의 소유자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나는 애인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우체통에 넣기 전에 서로의 편지를 미리 읽어봤다면? 나에게 저 문장이 지금처럼 큰 허탈감을 줬을까? 엽서의 남은 공간이 없어 다급하게 끝내느라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화나거나 서운할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문장에 내가 (언제나처럼) 과민한 것이겠지.

모두가 한 치 앞도 모르며 사는데, 당연히 일년 후를 모르는 거고, 모르니까 모른다고 쓴 거고. 그렇지만, 지금(은) 사랑 하니까! 정말 사랑해. 라고 쓴 것일, 있는 그대로의 문장.

[그건 모르겠지만 지금 정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