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들이 몇 년간 매달리는 난제를 증명하는 것과 수학자 영화를 재밌게 찍는 것… 어느 쪽이 어려울까?

성의없는 소개를 하면 안 되겠지만, 안나 노비옹의 〈마거리트의 정리〉(2023)는 〈굿 윌 헌팅〉의 여성 버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맷 데이먼이 타락한 천재로 (또) 분해 도박에 손을 댔던 〈라운더스〉나 〈21〉 같은 포커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럼 맷 데이먼 유럽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죄송하다) 〈마거리트의 정리〉는 앞의 두 영화보다도, 그리고 수학자 영화의 ‘영구 결번’ 위상을 지닌 〈뷰티풀 마인드〉와 비교해도 내내 안전하게, 예상가능한 전개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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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유효하게 웃기다고 생각한 대사는 딱 한 줄이다. 촉망받는 수학자인 박사과정생 마거리트는 교수의 기대가 걸린 중요한 세미나에서 난제를 풀어 증명하던 중 간과했던 부분이 드러나자 당황하여 강당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다소 영화적인 행동을 한다. 그 후 교수와 싸우고 정신쇠약이 찾아온 나머지 홧김에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한다. (맷 데이먼이나 존 내쉬를 생각해 보라고! 이렇게 유약할 수가 있는 거임?)

마거리트는 기숙사를 떠나 일을 구하던 중 우연히 만난 댄서 노아와 같이 살게 된다. 힙합 댄서인 노아는 삶의 방식이 마거리트와는 확연히 다른 듯하다. 방에서 혼자 수학을 풀던 밤, 노아가 누군가를 데려와 내는 소리를 듣고 나서 마거리트는 다음날 아침에 마주친 노아에게 대뜸 이렇게 말한다. “밤에 너 오르가즘 느낀 거 들었어 J'ai entendu ton orgasme la nuit.” 아니… 보통은 “소리가 크더라” 고 돌려 말하거나 “섹스하는 소리 들렸어” 정도로 말하지 않나? 음…

뭐든 정확히 지적하고 언급해야 직성이 풀리는 마거리트의 성격을 드러내는 문장이기도 하면서, 경제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넌 경험한 적 없어?” 로 시작하는, “정 반대 같았던 수학 너드와 섹시한 댄서가 고민을 나누며 친해지는 걸스 토크”의 클리셰로 무난하게 이어진다. 수학뿐이던 마거리트의 인생이 처음으로 “반동 영역”으로 나아가도록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이다. 이후 “막 나가” 보겠다고 다짐한 듯한 마거리트는 길바닥 훅업을 시도하는데, 그냥 같은 클럽에서 나온 남자를 무작정 따라 걷는 식이다. 문장으로 옮기니까 실제 장면보다 훨씬 나쁘게? 후지게? 읽힌다. 왜일까? 어설프지만 무조건 성공하는 첫 훅업… 이런 건 일본 영화에서 많이 봐서 그렇다.

가녀린 고등학생이… 무슨 이유에선지 방금 정서적 타격을 크게 입고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마침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곧 넘칠 것만 같은 교외 뚝방길을 위태롭게 걸으며… 밑에서 쳐다보며 제발 빨리 내려오라는… ‘그냥 아무 일본 남자애’에게… “나를 데려가! 어서! 날 망가뜨려! 하야쿠!” 라고 호령하는 자기파괴적 장면… 아오이 유우나 고미츠 나나가 할 것 같은… 어설퍼서 성공하는 파괴적 훅업?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역설적 구조요청이라며 좋아했을 것이다… 과거의 나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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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거리트와 그가 고른 훅업남의 신체적 아우라(?) 혹은 태도(?)가 만드는 톤은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이 본 일본 영화의 톤과는 다르고, 그 이후의 전개가 자기파괴적 결과를 낳지도 않는다… 한 번의 훅업은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마거리트는 (굿 윌 헌팅을 봤다면 예상할 수 있을) 이런저런 충동과 연애, 불안에서 오는 좁은 시야, 방어적 끊어내기 등을 거쳐 비교적 인간 같은 수학자가 되어가는 듯하다. 분필로 수식을 또각또각 쓰는 소리가 좋긴 하지만, 수학 영화는 아무래도 너드들의 사회화 과정을 과장해 보여주는 취약성 영화다. (배우가 칠판 가득 수식을 채워나가야 하는 장면은 사실 필요 이상의 불안을 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새삼 〈굿 윌 헌팅〉이 얼마나 괜찮은 이야기였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학습을 미디어에 의존했던 나 같은 애에게 말이다… 큰일이다. 왜 나는 여성 감독의 여성 수학자 영화 리뷰를 쓰면서 굿 윌 헌팅 얘기를 하는 걸까? 천인공노할 잘못이다…

나는 최근에 이만희 감독 50주기전을 애써 준비한 선생님이 프로그램 링크를 단톡방에 올렸을 때 기껏 열심히 훑어보고 나서 이 따위 답장을 보낸 적이 있다. “유튜브에 〈돌아오지 않는 해병〉 치니까 신상옥 감독이 납북됐을 때 찍은 〈돌아오지 않은 밀사〉가 나오네요? 〈해병〉보다 〈밀사〉가 더 보고 싶어집니다. 북한 영화 틀면 아직도 국보법에 걸리나요?”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나도 일종의 수학자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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