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돌아온 살기연습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체구가 큰 40대 남자가 진료를 마치고 나와 카운터 앞으로 간다.
간호사가 그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는데 남자가 큰 목소리로 말을 자르듯, 귀가 잘 안 들리니 좀더 크게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즉시 팽팽해지는 공기를 느낀다. 조금 거침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간호사는 아, 제가 목이 아파서 크게 말하기가 어려워요, 라고 응대/대응한다. 이거 블라인드에 자주 올라오곤 하는 소위 기싸움의 형태를 띤, 서비스노동의 거부 혹은 진상고객 썰의 서막일까 생각한 나는 한층 더 긴장했는데, 남자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그는 그럼 제가 가까이 가서 듣겠다,고 하더니 몇 걸음 다가가 상체를 숙여 간호사 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간호사도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이로 가서 더 크게 말한다. 목소리를 들으니 간호사는 정말 목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럼에도 아까보다 뚜렷하고 힘있는 목소리다. 계속 긴장하고 있던 나는 이런 합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 사람이 “아프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나도 “아프다”고 했는데도 일이 해결된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건강해야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이것은 지나치게 건강해왔던 내가 절대 상상할 수 없던 해결방식이었다.
이 모든 건 내가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병원 예약시간을 놓쳐 “노쇼 환자”가 되었을 때 가득 차오르는 수치심. 몇 시간 혹은 하루가 지나서야 그 감정을 이겨내고 병원에 전화를 한다. “예약 시간에 못 갔는데, 다시 예약을 잡으려고요.” 나의 주저함이 무색하게 간호사들은 언제나 생각보다 간단하게 재예약을 잡는다. 간호사들은 “실패한/아픈” 사람들을 주로 다뤄서일까.
건강한 건 뭘까. 정각에 오기, “on time” 할 수 있다는 것. 혹은 몸이나 머리, 장비의 기동성이 평균보다도 더 좋아서 “예상 소요시간”보다도 빨리 이곳저곳 다닐 수 있는 것. 튼튼한 몸과 팽팽 돌아가는 잔머리로 최대 가성비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 자고 싶으면 시간 낭비 없이 바로 잠드는 것. 몸을 잘 가눌 수 있는 것? 혹은 정신적으로 잘 흔들리지 않는 것? 사회적 정상성을 유지하는 것? 버스나 에스컬레이터 손잡이가 세균의 온상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상식이 있을 뿐 아니라 그걸 정말 안 잡고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 건강한 사람들은 건강하기 때문에 병에도 안 걸리고, 계속 건강함을 유지한다. 아픈 사람들은 아픈 몸 때문에 계속 아픈 상태에 머무른다.
많은 일, 프로젝트는 20-40대의 몸 건강한 사람들이 피치못할 변동사항 없이 풀타임으로 모두 참여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운영된다. 지저분하고 아프며 치료나 관리가 필요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비상 상황에 쓸 수 있는 여분의 자원이 마련되었을 때 가능하다. 비정기적, 우발적인 돌봄이 필요한 반려인과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당일 변동, 펑크를 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염두하며 살아야 한다.
건강한 몸을 가진 것은 이미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우파적 몸. 건강한 몸을 갖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다른 사람의 사정을 고려하는 데 이미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뭔가를 싫어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또한. 여름에 벌레 우는 소리 혹은 다툼이 일어나는 상황, 아이 우는 소리를 싫어할 수 있는 것.